12강 - 子符
* 자부(子符)
본인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모든 것은 선과(善果)와 악과(惡果)라는 열매를 맺게 마련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인과(因果)라고 하는데 자부에서는 因을 가리켜 充이라고 했으며, 果는 선악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는 午符의 ‘익자삼우 손자삼우’가 있습니다. 하필이면 왜 자부와 오부에 이와 같이 비슷한 기록을 남겼을까요? 그것은 자오가 선후천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둘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으니 선천은 선악으로 머리를 들었고, 후천은 손익을 계산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선악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요? 세상에서는 선악의 기준을 대개 사적(私的)인 면에 두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하면 선이고, 불리하면 악으로 규정하고 있는 게 동서고금의 실정입니다. 하지만 현무경에서는 惡을 위에 西를 쓰고 밑에 心을 쓴 상태라고 일러줍니다. 이처럼 亞心을 惡으로 하는 것은, ‘버금 가는 마음’을 가리킨 것인데, 남과 비교하여 항상 맞먹으려고 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현무경에서는 西心을 악이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어두운 의식, 무지한 의식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모르는 게 죄’라는 것과 같으니, 불가의 무명(無明)을 가리킵니다. 깨달음이 없는 마음은 마치 어두운 밤과 같아서 아무리 밝은 길을 가려고 해도 난관에 봉착하기 일쑤입니다.
善은 羊과 言을 합한 글자요, 양은 남방과 서방의 접경인 未이므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매체를 가리킵니다. 이는 곧 未에서 새로운 후천 개벽의 말씀이 나올 걸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가리켜 子未回라고 동경대전에서는 일러주었습니다. 즉, 현무경에서의 선은 子가 후천의 시작인 未와 만나는 것이요, 악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자미회를 이루면 이익이요, 그렇지 못하면 손해라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西心은 酉가 서방의 중심에 있는 걸 가리킨 것이니, 그것은 형상적인 물질문명의 중심에 자리 잡은 西中有一인 酉는 악이 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진사지간으로 들어가 酉正月로 뜨게 되면 선이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정은 자부의 형상을 보면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자부의 맨 위를 보면 3양을 가리키는 ☰이 있고, 그 밑으로 사정사유(四正四維)를 가리키는 부호가 끝나는 지점에 1음을 가리키는 =이 있습니다. 이것은 3양이 다하면 1음이 발생한다는 이치를 보여줍니다. 이걸 보면 악으로 채워져 성공한다는 것은 곧 3양이 되었다는 말이고, 선이 성공한다는 것은 1음의 시작을 의미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럼, 왜 양은 악이라 하고 음은 선이라 할까요? 사실 알고 보면 음과 양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어느 것이건 제 때에 맞추어 용사하면 선이 되는 것이요, 그 때를 놓치면 악이 되는 것입니다. 선천 물질문명에서는 물질이 형상으로 나타나는 법이니 양을 위주로 하는 것이고, 후천 정신문명에서는 정신이 무형으로 나타나는 법이니 음을 위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간 인류는 외형적인 물질을 좇아 허욕에 들떠 있었지만, 이제는 철저하게 내면으로 의식을 돌려 자신을 발견하고 용사하는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이런 이치에 의해 자부의 글자 수는 18입니다. 서전 16자는 반듯하게 정돈 된 4상을 가리키고, 시전 두 자는 음양을 의미합니다. 즉 반듯하게 정돈 된 4상속에서 새로운 후천의 현무가 싹트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현무경 이조장 양부 여섯 개 중에서 자부와 인부에만 ‘현무’라고 했지, ‘현무경’이라고 하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아직 진사 3양으로 자라서 巳時를 시두로 할 수 있는 힘이 미약하다는 걸 일러주고 있습니다.. 무엇이건 3에 이르러야만 새로운 생명을 탄생할 수 있는 법인데, 子는 1양이요, 寅은 2양이므로 자부와 인부에서는 그냥 ‘현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여섯 개의 양부가 있는 이조장은 4경6현무로 되어 있으니, 동서남북 4방이 6합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우주의 구조라는 걸 일러주는 셈입니다.